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전직 차관 아들 살해 사건 (문단 편집) == 피해자 == [[파일:deadhiki.jpg]] 아들 쿠마자와 에이이치로(熊澤英一郞). 1975년 3월 20일 출생[* 일본에서는 3월생까지는 빠른년생이므로 사실상 1974년생.]. 향년 44세. 위 사진은 피해자의 19세 때 사진이며 죽기 전에 찍은 사진이 아니다. 실제 살해 당시 피해자는 두정부까지 M자형 탈모가 진행되어 있던 상태라고 한다. 아마 위 사진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외모에 자신이 있던 시절이기에 스스로 공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세 때 사진에서조차 탈모가 진행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피해자 쿠마자와 에이이치로는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이었으나 잔혹한 이지메를 겪으며 성격이 어두워져 갔다고 중고등학교의 지인들은 말했다. 그런데 에이이치로 본인도 눈치 없이 아무 상황에서나 하고 싶은 말을 던져서 이지메와는 별개로 다들 꺼렸다는 이야기[* [[일본어 위키백과]]에 의하면 공식적 입장은 이쪽인 듯하다. 성격이 이상해서 그냥 다들 피했다. 사실 모범생(?) 시절에도 부모님께 태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일은 성적이 좋은 범생이 중 [[사회성]]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아버지도 도쿄대를 거쳐 관료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인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런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성은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의 인싸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실제로 한국에서도 행정고시 합격자들의 평균 사회성은 일반인 이하라서 일반인 평균 수준의 사회성으로도 충분히 술상무 짓이 가능하다고 한다.) 타고난 성격이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집안 배경상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것은 어려운 스타일이었을 것이다.]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 입시에도 실패하였고 도쿄 소재 요요기 애니메이션 학원 애니메이터과 졸업 후 HAL 도쿄(IT, CG, 게임디자인 전문학교)를 중퇴했다가 다시 요요기 애니메이션 학원 캐릭터 디자이너학과에 입학해 졸업했다. 정부의 고위 관료였던 아버지와는 달리 그야말로 서브컬쳐 일직선의 인생을 살아 온 듯하다. 다만 애니메이션 학원을 다니기 전인지 후인지는 모르겠으나 모 사립대에서 건축학 학사를 취득한 후[* 공식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니혼대학]]이 유력하다고 한다.] 류츠케이자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CG 관련이었다는 듯.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상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공부를 계속 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대학 입시를 실패했다는 학생이 진학한 대학이 닛토코마센 라인으로 추정되는 걸 보면 고등학교 때 막장으로 살았다고는 해도 공부를 아주 안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류츠케이자이대학이 전형적인 F랭크 대학인데 그런 학교의 대학원으로 갔다는 것은 대학 생활을 충실히 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https://twitter.com/hiromi_kanzaki|트위터 계정]] [[https://www.pixiv.net/member.php?id=2851269|픽시브 계정]][* 망인이 그린 다수의 일러스트가 업로드되어 있는데 40대 오타쿠답게 화풍이 레트로한 8, 90년대 그림체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0vI-tawCDrY9GXZa7vVhnw|유튜브 계정]] 한편 [[혐한]], [[넷 우익]] 성향이 강한 듯 트위터 계정에는 [[춍]]과 같은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https://twitter.com/hiromi_kanzaki/status/511512303884201984|#]]이 다수 남아 있었으며,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를 증오했는지 어머니를 죽이고 싶다는 트윗도 남아 있다.[[https://twitter.com/hiromi_kanzaki/status/523414308550488064|#]], [[https://twitter.com/hiromi_kanzaki/status/822632776964907008|#]],[[https://twitter.com/hiromi_kanzaki/status/870270998972473344|#]] 살해 추정 시각은 새벽 3시 20분이며, 사인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 피해자는 아버지가 휘두른 식칼에 복부에 2회, 옆구리에 2회, 견갑골 아래 등 부위에 1회, 양손과 팔에 여러 방어흔을 입은 채 살해당했으며 이 중 옆구리와 복부의 자상이 치명상이 되었다고 한다. 양손과 양 팔에 남은 방어흔에서 피해자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아버지의 흉기에 저항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피해자가 즉사하지 않고 여러 차례 흉기에 찔린 후 방치당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피해자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이 밝혀져 재판에서 논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정황상 범인인 아버지가 치명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채 행동불능으로 죽어 가는 아들을 방치한 채 구경하다가 아들이 숨지자 그제서야 자수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해자는 구속되었고 법정에서도 살인죄가 인정되었다. 경찰 조사에서 히데아키는 “(아들이) 히키코모리 성향에다, 집안에서 가족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향도 있었다”며 "아들이 초등학생들에게 적대감을 표출하게 되자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처럼 [[메이와쿠|주위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장남을 찔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장남을 "죽일 수 밖에 없다"고 기록된 서한도 확인됐다. 실제로 피해자는 중학생 때부터 어머니를 대상으로 폭행을 가했으며 사건 발생 1주일 전에 독립한 거처에서 문제가 있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부모와 갈등이 심해졌고 부모에게 폭력을 썼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특히 가해자가 체포된 이후 가해자를 대상으로 경찰에서 수색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몸 곳곳에 멍 같은 게 있는 걸 봐서는 아버지에게도 폭력을 자주 행사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부모들은 절대로 외부, 특히 경찰에게 이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일본 사회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 잡혀 들어가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면 가족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기에 가정불화와 [[가정폭력]]이 일어나도 법적 처벌을 할 수 있음에도 신고도 안하고 쌓아 두기만 하는 사례가 많다. 문제는 이게 쌓이다가 결국엔 패륜 범죄와 이혼으로 터지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참고로 한국도 이와 비슷하여 사회 문제로 악화될 정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